이 글은 1986년에 작성된 논문 「On the Physical Death of Jesus Christ」을 대략 요약한 것입니다. 전체 논문은
여기 있습니다.
해당 논문은 신앙적 관점에서 쓰인 게 절대 아니며, 의학적·해부학적 증거를 기반으로 예수의 죽음을 과학적으로 재구성한 논문입니다.
1. 서론
이 논문은 예수의 죽음을 단순한 신앙의 사건이 아니라, 실제 인체에 일어난 의학적 사망 과정으로 규명하려는 시도다.
논문의 저자들은 복음서의 기록과 고대 문헌(로마·유대 사료), 고고학적 증거(특히 토리노 수의) 등을 비교하여 십자가형의 생리적 영향을 재구성한다.
여기서 멈칫할 수 있는데, 토리노의 수의는 고고학적 증거가 되지 못한다. 하지만 이 논문을 작성한 1986년 당시, 방사성탄소연대측정(C14 test)이 토리노의 수의를 아직 측정하지 않았었고(토리노의 수의에 방사성탄소연대측정을 실제로 적용한 건 1988년), 일부 연구자들은 “이 수의가 실제 1세기 예루살렘의 매장 방식과 부합한다,”라고 봤던 시기였다. 그리고, 이 논문을 작성한 William D. Edwards 박사 역시 수의가 절대 ‘증거’라기보다는 ‘가능성 있는 참고 자료’ 혹은 ‘추정 근거’로 취급했음을 펨붕이가 대변하여 밝힙니다.
핵심 요지는 다음과 같다: 예수는 강한 매질로 인한 심한 출혈과 쇼크 상태에서 십자가형을 당했고,
십자가에 매달린 자세로 인해 '호흡곤란'이 겹쳐 사망했다는 것이다.
결국 로마 병사의 창이 그의 심장과 흉강을 관통하면서, 사망이 확정되었다고 본다.
즉, "예수는 십자가에서 실제로 죽었다"라는 결론이 현대 의학적으로도 충분히 타당하다는 게 요지다.
2. 겟세마네

하나님의 아들이 어떻게 죽음을 맞이했는가; 의학이 본 예수의 죽음 - 1.png (약혐) 하나님의 아들이 어떻게 죽음을 맞이했는가: 의학이 본 예수의 죽음
예수는 체포 직전 겟세마네에서 극도의 정신적 스트레스를 겪으며, “땀이 핏방울처럼 떨어졌다”(누가복음 22:44)라는 증상을 보였다고 전한다.
의학적으로 이는 '혈한증(hematidrosis)'이라 불리는 매우 드문 현상으로, 극심한 공포·긴장·불안 시 모세혈관이 터져 땀에 혈액이 섞이는 현상이다.
이 과정에서 실제 혈액 손실은 미미했을 것으로 보이지만,
피부가 매우 예민하고 약해졌기 때문에 이후 채찍질과 매질에서 피부 손상과 고통이 배가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즉, 겟세마네의 심리적 공포가 육체적 취약성의 전조로 작용했음을 시사한다.
3. 재판
예수는 유대 최고법정 산헤드린에서 신성모독죄로, 이후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는 왕권 찬탈 혐의로 기소된다.
밤샘 심문과 폭행, 장거리 이동(약 4km)을 겪으며, 예수의 체력은 급격히 저하되었다.
논문의 저자들은 예수가 본래 건강한 성인 남성이었으나, 이 12시간 동안의 정신적·육체적 고통이
곧 이어질 매질과 십자가형에서 치명적인 생리적 부담을 초래할 전조 상태였다고 분석한다.
4. 매질

하나님의 아들이 어떻게 죽음을 맞이했는가; 의학이 본 예수의 죽음 - 2.png (약혐) 하나님의 아들이 어떻게 죽음을 맞이했는가: 의학이 본 예수의 죽음
로마식 채찍(flagrum)은 가죽끈 끝에 납덩이와 뼈조각이 달린 잔혹한 도구였다.
이로 인해 피부가 찢기고 근육이 드러나며, 출혈과 통증으로 순환계 쇼크가 발생한다.
저자들은 “매질의 강도에 따라 십자가에서 생존시간이 결정되었다,”라고 할 만큼,
이 단계에서 이미 예수는 '사망 직전의 ‘전(前)쇼크 상태’(preshock)'에 들어갔다고 본다.
또한, 채찍 후 병사들이 예수의 상처 난 등에 겉옷을 씌웠다가 다시 벗기면서
피가 응고된 부위가 뜯겨 나가 출혈이 재개되었을 가능성도 제시한다.
즉, 예수는 십자가에 오르기 전에 이미 심각한 탈수·빈혈·통증 쇼크 상태였다는 것이다.
5. 십자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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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형은 원래 페르시아에서 시작되어 로마가 고안한 극도로 잔혹한 사형 방식이었다.
보통 피고인은 십자가 전체가 아니라 '가로대(patibulum, 약 35~55kg)'만 짊어지고 처형장으로 이동했다.
손목은 요골과 손목뼈 사이에 못이 박혀 매달렸는데, 이는 손바닥보다 훨씬 견고하기 때문이다.
못이 '정중신경(median nerve)'을 손상시키며, 팔 전체에 번개 같은 통증과 부분 마비를 일으켰을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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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은 나무 기둥의 앞면에 포개어 박았으며, 이로 인해 깊은 신경 손상과 지속적 통증이 유발됐다.
가장 큰 생리적 문제는 호흡의 장애였다.
팔이 벌려진 상태에서는 폐가 항상 ‘들이쉰’ 자세로 고정돼 숨을 내쉬기 어려웠고,
숨을 쉬기 위해서는 못이 박힌 발에 체중을 실어 몸을 들어 올려야 했다.
이 과정이 반복되며, 극도의 피로와 근육경련이 발생하고, 결국 '고탄산혈증(hypercarbia)'으로 질식이 진행되었다.
따라서, 십자가형의 주된 사망원인은 '저혈량성 쇼크와 탈진성 질식(hypovolemic shock + exhaustion asphyxia)'이며,
심한 탈수와 부정맥, 심부전 등도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분석된다.
6. 예수의 십자가형
하나님의 아들이 어떻게 죽음을 맞이했는가; 의학이 본 예수의 죽음 - 6.png (약혐) 하나님의 아들이 어떻게 죽음을 맞이했는가: 의학이 본 예수의 죽음
예수는 오전 9시경 골고타에서 두 강도와 함께 십자가형을 당했다.
매질로 쇠약해진 탓에 스스로 십자가를 지지 못했고, 키레네 사람 시몬이 대신 짊어졌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는 일곱 번 발언했으며, 이는 숨을 내쉬는 동작과 동시에만 가능한 일이므로
그의 마지막 발언들은 극도의 고통 속에서 의식적으로 한 행위였음을 뜻한다.
오후 3시경, 예수는 큰 소리로 외친 뒤 머리를 숙이고 사망했다.
군인들은 다리뼈를 부러뜨려 죽음을 앞당기는 ‘crurifragium’을 실시했지만,
예수가 이미 죽었음을 확인하고 창으로 옆구리를 찔러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이는 복음서의 기록과 일치하며, 심낭(心囊)과 폐막액이 함께 흘러나온 현상으로 해석된다.
7. 예수의 죽음

하나님의 아들이 어떻게 죽음을 맞이했는가; 의학이 본 예수의 죽음 - 7.png (약혐) 하나님의 아들이 어떻게 죽음을 맞이했는가: 의학이 본 예수의 죽음
요한복음의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라는 표현은, 해부학적으로 오른쪽 흉부를 찔러 심장과 폐, 심낭을 관통한 상처를 의미한다고 본다.
흘러나온 ‘물’은 '심낭액 혹은 늑막액(serous pleural/pericardial fluid)'이며,
‘피’는 심방 혹은 심실의 혈액이었다고 추정된다.
이는 당시 저혈량 상태와 심부전 가능성을 고려할 때, 매우 자연스러운 생리 반응이라는 것이다.
예수가 단 6시간 만에 사망한 것은 일반적인 십자가형보다 빠르지만,
이는 이미 매질로 인한 심각한 쇼크, 탈수, 호흡곤란, 심장 부정맥 등이 누적된 결과로 설명된다.
일부는 '심장파열(cardiac rupture)' 가능성을 제시하지만, 저자들은 ‘심장 부정맥 또는 심폐부전’이 보다 가능성 높은 원인이라고 결론내린다.
따라서, 예수의 죽음은 다인성(multifactorial) 사망, 즉 쇼크·질식·심장 부정맥이 복합 작용한 결과였다.
8. 결론
저자들은 예수가 실제로 십자가에서 생리학적으로 사망했음을 명확히 입증한다.
그의 죽음은 단순한 의식상태 소실이나 기절이 아니라, 의학적으로 되돌릴 수 없는 심폐정지였다.
로마 병사의 창이 심장과 심낭을 관통함으로써 사망이 최종 확정되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따라서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지 않고 회복했다”라는 '소생설'은
현대 의학 지식과 고고학적 증거 모두에 반하는 주장이라고 결론짓는다.
논문은 신학적 믿음을 주장하지 않으면서도, 역사적·의학적 사실을 통해 “예수는 실제로 죽었다”라는 점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려는 작업이다.